- 저자
- 임우진
- 출판
- 을유문화사
- 출판일
- 2022.06.25
난 낯선 것을 마주할 때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 빗대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이국의 여러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서울이 떠올랐다.
서울이 고향도 아니고 몇 년간 살았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비교군은 서울이었다.
겉할기일뿐이라도 내가 아는 서울의 단면들을 잠시 다녀왔던 그 도시들의 단면에 비추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재고 고민하며 생각하던 것들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있었다.
특히 목차부터 읽어 내려가다 8장의 부제 '모임의 끝은 왜 항상 노래방일까'가 눈에 들어오자
참을 수 없는 궁금함에 다 제쳐두고 8장부터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보통 밥 먹고 카페 갔다가 헤어지는 (먹다 끝나는) 약속 공식을 따르다가도
가끔 무언가 괜스레 아쉬운 날에는 꼭 노래방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저 내 안에 내재된 K-DNA의 영향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깊은 공간적 의미가 있었다.
저자는 먼저 노래'방'이라는 이름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에게 방이란 이렇게 '남'과 '우리'를 구분해 주는 공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방은 공동체 의식이 있는 가까운 사람만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PC방, 찜질방, 노래방, 만화방, 감방(!)을 예시로 들며 '-방'으로 끝나는 장소는
한국인이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보편적인 한국의 집 구조를 통해 한국인의 폐쇄적인 공동체에 대한 설명으로 연결된다.
한국인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을 지어 살며 자기 땅 밖의 세상에 크게 관심 갖지 않았고
절반이 넘는 국민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지금도 그 기조는 이어진다.
국가 개발 과정에서 정부는 시공사에 도시 인프라 시설 건설에 대한 책임을 전가했고
최종적으로 수요자, 즉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게 될 입주민이 그 건설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그렇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자신들이 비용을 부담한 아파트 단지에 대해 배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가족적 내(內)집단의 결속감에 기초한, 유난히도 내·외를 구분하는 우리의 부족적 공동체 문화는
'집'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외부와는 단절을 택한 '울타리' 건축 문화로 형상화돼 왔다."
옆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기묘한 불편함의 원인이 마침내 밝혀졌다.
단순히 낯섦에서 오는 어색함이 아닌 알 수 없는 찝찝함이 가슴속에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피부로 느낀 사회적 분위기에서 얻은 빅데이터가 내 안에서 감정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결국 한국인이 '우리'라고 칭하는 공동체는 굉장히 제한적인데
노래방은 모임이 파하기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결속을 다지기에 적합한 공간이라는 해석이었다.
재미있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분위기가 좋다'고 느끼는 이유가 유럽에서 건물들이 정돈되었다고 느끼는 이유와 같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고
도시가, 서울이 '반사 유리'라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어떻게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있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중립적인 서술을 위해 냉담한 어조를 가장하지만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책 곳곳에서 따뜻하게 느껴졌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어떤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내가 사는 이 도시가 한 톨이라도 더 낫게 변할 수 있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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